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제사해 운동 (문단 편집) === 결말 === 먼저 결론부터 말하자면 제사해 운동은 '''말 그대로 폭망'''했다. 우선 사해랍시고 올려놓은 생물들의 '''포획 난이도'''부터가 차원이 달랐다. 크기도 큰 데다가 눈에도 잘 띄고 번식도 한정적이고 지상에서 사는 참새와 달리 쥐는 하수도에 살고, 파리와 모기 등은 더러운 물가나 습지 등 인간의 손이 비교적 덜 타고 사람의 눈에도 덜 띄는 곳에서 번식하는 데다가 번식과 성장도 참새와는 비교도 못할 정도로 빠르다 보니 참새에 비해 쉽사리 근절하기 어려웠다. 결국 사람들은 상술했듯 포대 아래에 다른 생물들을 깔아놔 실적을 조작하거나, 아예 기른 뒤에 제출하는 등 참새를 제외하고서는 실질적이고 그럴듯한 결과물은 내지 못하는 실정이었다. 거기다가 참새가 곡물을 먹는다는 것을 곡물'''만''' 먹는다고 성급하게 맹신한 것도 문제였다. 1958년 한해간 참새가 '''2억 1천만 마리'''가 잡히며 사실상 중국 내륙에서 참새의 씨가 마른 1959년, 농사가 흥할 거라는 정부와 농민들의 기대와 달리 '''[[메뚜기|황충]]을 위시한 참새에게 피식당하던 해충들의 개체수가 조절되지 못해 해충이 막대한 규모로 발생'''했다. 거기에 후술할 여러 요인까지 겹쳐 [[중국사]]에 길이 남을 대흉년이 벌어졌고 '''공식 발표 2,000만 명, 학계 추산 최소 3,000만 이상, 최대 4,500~6,000만 명'''의 기록적인 아사자가 발생했다. 황충 군집은 말 그대로 참새를 '따위'로 취급할 정도로 농촌에 막대한 피해를 입혔고, 일본뇌염, 뎅기열, 황열, 웨스트나일열, 말라리아, 이질, 장티푸스, 살모넬라, 콜레라 등의 각종 질병들을 옮기는 질병의 매개체 역할을 하던 모기와 파리도 포식자인 참새가 없어지면서 폭발적으로 번식, 전염병을 대규모로 퍼뜨렸다. 결국 식량 생산량은 낮아지고 질병 발병률은 높아져버린 인류사 전체로 봐도 드물 정도의 악재가 겹쳐졌다. 정확히는 [[상하이]] 출신 학자 차오수지(曹樹基)는 공식적 지방정부 자료에 의거해 3,250만 명 사망을 주장하였고, 1980년 무렵의 공식 조사팀 일원이였던 천이쯔는 4,300 ~ 4,600만 명 사망을 주장했다. 독자적 조사를 실행한 조사관 위시광은 5,500만 명 사망설을 주장하였으며, 일부 역사가들은 6,000만 명 이상을 주장하기도 한다.[* 공식 자료와 연구자들간의 수치가 차이가 큰 것은 한 쪽이 자료를 누락, 과장했기보다는 '피해자'의 기준을 어떻게 잡았냐의 차이다. 공식 자료는 말 그대로 '''해당 사태로 벌어진 아사자/병사자'''만을 주로 측정했지만, 연구자들은 그로 인해 생기는 국적인 물류·유통·의료·행정 체계의 붕괴로 인해 추가적으로 생긴 2차, 3차 피해자까지 고려한 수치다. 한 마디로 1차적 피해자도 피해자지만, 이런 사태만 없었어도 멀쩡히 살았을 사람들까지 죽어버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고려한 것.] 이게 얼마나 심각한 상황이었는지 감이 안 잡힐 수 있기 때문에 설명을 하자면, 1960년대 [[대한민국]]의 인구가 대략 '''3,000만명'''이었다. 1:1로 대체한다 치면 당시 한국인들이 절멸하고도 부족한 수준이다. 굳이 당시 한국이 아니라 옛 [[중국]], 정확히는 북송 시대부터 [[유럽]]을 시궁창으로 밀어넣었던 [[흑사병]]이 유입되었을 당시를 예로 들면 더 와닿을지도 모른다. 당시 죽은 중국인의 인구가 대략 '''2,000 ~ 3,000만''' 정도였다![* 다만 중국은 평시에도 혼란이 심하면 호적상 인구가 확 줄었다가 안정되면 복구되기를 반복했고, 또 일정 비율은 언제나 [[세금]]을 낼 수 없는 빈민층이라 통계에서도 빠지는 등 [[유럽]]에 비해 인구 추계가 부정확했기 때문에 얼마나 줄었을지는 알기 어렵다. 물론 인명피해가 엄청났다는 사실만큼은 변함은 없겠지만...] 모택동과 당 지도부는 여기에 한술 더 떠서 곡식사이사이에 해충이 못들어가도록 다닥다닥 모여서 씨를 뿌리라 했는데 이는 해충을 더 도와주는 꼴이었고 그 다음해에도 농사는 그야말로 작살이 났다. 결국 당 지도부는 소련 [[서기장]]인 [[니키타 흐루쇼프]]에게 빌어 [[연해주]]에서 20만 마리의 참새를 공수하는 수밖에 없었다. 일이 이 지경에 이르자 참모들이 마오 주석에게 이 '참새 전쟁'을 계속할지 물으니 이 모든 사태의 장본인인 모택동 주석은 다시 다음과 같이 교시하였다. >'''됐어(算了, 쏸러).''' 그리하여 “참새는 해로운 새다.”라는 마오의 한 마디에서 시작된 이 무의미하고 단순무식하기 짝이 없는 참새 도살극은 중국인은 물론 중국어를 배우는 타국인이라도 누구나 구사할 수 있는 단순한 두 음절이 마오 주석의 입에서 나옴으로써 그렇게 막을 내렸다. 이후 계속 이어진 제사해 운동에서 타깃은 슬그머니 바퀴벌레로 바뀌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